韩国“梨泰院”地名的由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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来源:网络
2021-03-15 00:24
编辑: 欧风网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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摘要:
韩国“梨泰院”地名的由来
이태원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효종(1619~1659)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梨泰院”地名的来历是以刘氏朝鲜阶段的孝宗(1619—1659)时逐渐广为流传出来的。
효종때 배밭이 많은 동네라는 까닭으로 배나무 이(梨)가 붙은 이태원(梨泰院)으로 불렸다고 전해 내려온다.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이곳에 귀화해 살았다는 뜻으로 ‘이타인(異别人)’이 어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 왜란중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모여 살던 동네여서 다를 이(異), 태반 태(胎)자를 써서 이태원(異胎圓)이란 이름을 붙였다는주장도 나왔다.
孝宗时,因为那时候“梨泰院”的梨地许多,因此在地名前加上了一个杏树的“梨”字,被称作“梨泰院”。壬辰倭乱阶段,倭军规化图在此,因为她们长期性定居在这儿,也是有取义“异别人”那样的语源而造成“梨泰院”地名来历的叫法。壬辰倭乱后这些回不去了日本的倭军与遭受这种倭军性暴行的女性生的小孩关键都集聚在梨泰院这一带日常生活,因此也是有“이태원”的地名是源自“이”—不一样的异、”태”—胚胎的胎“异胎圆”之意那样的叫法。
그러나 이태원은 이방인 공동체 성격이 강한 곳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조선 때부터 군사 관련 시설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 들어 군용지로 이용되면서 일본군 사령부가 머문 뒤 군사지역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군대가 1882∼1984년 주둔했고, 1910∼1945년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광복 이후엔 미군이 이곳을 차지했다. 한국전쟁 뒤 미군이 이태원 상권을 주도했다. 1970년대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품들로 상권이형성된 이태원은 미군 유흥가로 거듭나 클럽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可是就梨泰院这个地方具备明显的异方人共同命运性情的叫法大伙儿的建议全是一致的。从朝鲜阶段逐渐,这儿便是一个与军事息息相关的地区。在日帝霸占期时曾做为军事商业用地存有,接着日军指挥所也在此开设,到此“梨泰院”做为一个军事地区的正体性也得到基本呈现。1882∼1984年为了更好地前去镇压“壬午军乱”而进到朝鲜的清军就驻屯在此,1910∼1945年日军在此开设了朝鲜指挥所,朝鲜收复后美国军队则占有了这个地方,并在中日甲午战争后核心了这儿的商业圈。二十世纪七十年代从美军基地排出的物件慢慢产生了一个详细商业圈的梨泰院接着入驻了像如雨后春笋不断涌现的许许多多的鸡店和商务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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